군종교구장 일면스님은 지난 4월18일 19일 레바논에 유엔평화유지군 일원으로 파견중인 동명부대를 방문, 장병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귀국했다. 방문에는 군법사 3명도 함께 했다. 스님이 해외 파병부대를 위문하는 것은 지난 2005년 법장스님이 이라크 자이툰 부대 방문에 이어 두 번째다. 일면 스님이 부대 방문기를 본사에 보내왔다. 사진과 스님의 글을 싣는다.
<위 사진설명> 일면스님이 동명부대장을 비롯한 부대관계자 및 동행한 법사들과 함께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등을 달고 있다.
“정말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장병들”
호국동명사 기념비 · 연등 제막…수계법회 봉행
레바논은 멀었다. 4월17일 밤 11시 55분 인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0시간40분을 날아 다음날 새벽 6시가 다되어 아랍에미레이트 두바이에 도착했다. 두바이에서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로 가는 비행기를 갈아 타기위해 공항 청사에서 다시 2시간을 기다려야했다. 아침 6시 이륙한 비행기는 다시 3시간 가까이 더 날아 베이루트에 안착했다. 부대 까지는 앞으로도 몇 시간을 더 가야한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베이루트 공항에 내리자 삼엄한 경계가 펼쳐졌다. 먼 중동 땅 이국 정취를 느낄 새도 없이 긴장이 몰아쳤다. 첩보 영화 속에서나 보던, 검은 선그라스를 낀 검정색 양복 차림의 사내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내가 들고 있던 짐을 확 나꿔 채더니 서둘러 앞서가고 안내하던 또 다른 사내도 재빨리 방탄 차량 속으로 인도했다. 그 긴박한 움직임에 우리 일행은 비로소 긴장의 한 복판에 왔음을 실감했다.
레바논 남부 티르의 동명부대 까지 가는 길에 특급 경호작전이 펼쳐졌다. 우리 일행이 탄 차량은 방탄에다 반경 500미터 이내의 전자파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첨단 장치가 부착돼 있었다. 중무장한 군인이 함께 탑승하고 차량 밖에는 현지 경찰관 100여명이 동원돼 외곽 경비를 담당했다.
꼬박 하루가 걸려 동명부대에 도착했다. 그제서야 우리도 긴장을 풀고 안도할 수있었다. 이처럼 특급경호가 펼쳐진 것은 얼마 전 우리 일행이 거쳐온 길에 폭탄테러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동명부대가 자리한 지역은 레바논 남부 해안도시 티르에서 3km 가량 떨어진 디반이라는 곳이다. 부대가 위치한 지역은 남부 서해안을 포함한 내륙지역으로 4만800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주로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이며, 팔레스타인 난민촌도 있다. 우리가 동명부대를 방문한 것은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해외에서 고생하는 우리 장병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조금이나마 평안을 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나를 비롯해 국방부 군종과장 김상래법사, 1군사령부 손병철 법사, 육본 군종운영과장 경연수 법사가 동행했다.
레바논에서 평화유지활동을 하고 있는 동명부대(부대장 송경호 대령)는 350여 명의 특전사 위주의 정예장병들로 이뤄진 최정예부대다. 부대이름 동명은 ‘동쪽(東)의 밝은(明) 빛’, 즉 ‘레바논의 평화를 위해 멀리 동쪽에서 온 부대’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엔평화유지군 서부 여단 소속으로 주요 임무는 지역의 감시 정찰, 민사작전, 레바논 군 지원 등이다.
어린이공원 완공, 컴퓨터 · 태권도 교실, 의료봉사
‘평화의 물결’ 계속…레바논인들의 가슴 깊이 자리
우리가 부대에 도착하자 장병들의 성대한 환영식이 베풀어졌다. 송경호 부대장이 부대의 레바논 평화정착을 위한 각종 활동 등을 보고했다. 이어 민사작전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에 동참했다. ‘평화의 물결(PEACE WAVE)’로 불리는 레바논 현지 민사작전은 주민들에게 필요한 각종 시설물 건립이나 컴퓨터 태권도 교실, 의료 진료 등을 중심으로 펼치고 있다. 특히 주둔 초기 디바 마을 어린이 공원을 완공식은 레바논 언론매체가 특집으로 보도할 정도로 큰 관심을 모았다. 교량을 건설하고 학교를 리모델링 하는 등 주민 숙원사업을 해결하면서 동명부대는 레바논인들의 가슴 깊이 자리하게 됐다. 군의관 2명, 간호장교 2명, 수의장교 등 12명으로 구성된 소규모 의무대는 주 3~4회에 걸쳐 5개 마을을 순회하며 의료·방역활동을 펼치며 지역 주민의 건강까지 책임지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 의료진이 10000만명이 넘는 현지인들을 진료했다고 한다.
우리가 현장을 방문하자 지역의 6개 시장이 와서 함께 좌담회를 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한국군이 최고라며 칭송이 그칠 줄을 몰랐다. 부대장은 우리 일행을 한국의 불교지도자들이라고 소개했다. 우리 군인들은 태권도 도장을 만들어 어린이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대학생을 비롯 주민들에게 컴퓨터를 교육하고 있었다. 한글을 배운 대학생이 컴퓨터에 우리말로 축사를 써서 보여주었다.
현지인들과의 좌담회에서 나는 한국의 발전상을 들려주며 이들의 분발을 독려했다. 우리는 지금의 레바논 보다 더 큰 폐허를 딛고 일어났다. 아직도 분단이 지속되지만 우리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일어섰다는 점을 강조하며 레바논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다. 그들 역시 한국이 강대국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스라엘 때문에 할 수없다고 했다. 이들이 이스라엘에 갖는 적대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아무런 재건활동도 경제활동도 할 수없음을 그들은 강조했다.
레바논 민족은 1400만명에 이르지만 정작 레바논 땅에 사는 인구는 400만명이 안된다. 모두 해외에 흩어져 사는 것이다. 우리를 접대한 한 시장은 “이스라엘이 있는 한 빈라덴이 더 나와야 한다”고 말해 우리 일행을 놀래켰다. 그들의 말을 들으며 한국처럼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도 없다는 생각을 했다. 요즘 경제가 어렵기는 해도 모든 것이 갖춰져 있고 어디든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고 마음 놓고 지낼 수 있는 한국을 더 사랑하고 아껴야겠다는 ‘애국심’이 새삼 들었다. 더불어 국민들이 평화롭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전방에서 그리고 해외에서 고생하는 우리 국군장병들이 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부처님의 가피력으로 무사히 근무를 마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저녁에는 불법무장 세력에 대한 감시 정찰활동을 실시중인 작전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우리 동명부대는 리타니 강 일대 작전 지역을 중심으로 매일 13개소에서 24시간 감시정찰 임무를 수행한다. 지금까지 무사고 정찰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레바논은 세계 30개국에서 1만 3000여 명의 평화유지군이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이미 다국적 동맹군을 파견해 놓고 있다. 이중 레바논이 가장 위험하다. 이 지역에 평화유지군을 파병한 것은 2006년 7월34일간에 걸쳐 전개된 이스라엘 헤즈블라 간 전쟁 때문이다. 이스라엘과 헤즈볼라가 전쟁을 중지하긴 하였으나 긴장은 가시지 않고 있다. 얼마 전 터진 폭탄테러가 그 증거이다. 오히려 긴장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레바논은 아랍에서 유일하게 기독교 인구가 많은 국가이다. 기독교와 이슬람 수니파, 시아파가 상호 권력을 분점 하는 형태로 국가를 운영하고 있다. 선거를 하면 대통령은 기독교인, 총리는 아랍계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가 나눠 갖는다.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공존하면서 그만큼 갈등의 요소도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정부군과 민병대 간의 교전이 빈발하고 있다. 부대장을 비롯 간부들은 정찰과정에서 사고를 가장 염려하며 한시도 긴장을 놓지 않고 있었다. 빈틈없고 치밀한 작전과 정찰 수행으로 주둔 후 단 한번의 사고가 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적은 병력 규모에도 불구하고 평화유지군에서 활동하고 있는 30개국 부대 중 가장 우수하며 모범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한다. 정말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장병들이다.
우리 일행보다 두 달 여 앞서 임충빈 육군참모총장이 다녀가 부대원들의 사기가 한층 높아있었다. 우리 일행이 방문하게 된 계기도 임총장님과 약속 때문이었다. 지난해 참모총장님과 이야기 하다가 우리 군인들 고생이 많은데 동명부대를 찾아 위문한번 하고 싶다는 말씀을 드렸더니 그렇게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다고 해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부모님이 보고 싶으면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라”
기독교 가톨릭 신자, 이태리 장병들도 염주 받아가
이튿날은 부처님 오신날을 기념하는 각종 행사를 했다. 동명부대 법당인 호국 동명사 기념비 제막식과 연등제막식 수계법회를 봉행했다. 법당에 나오는 병사는 100여명이나 됐다. 이중 60여명이 이날 수계를 했다. 송 부대장을 비롯 많은 부대 간부들도 불자였다. 나는 수계를 준 후 무사귀환을 축원했다. 이들에게 “여러분은 세계평화를 위해 이곳에 왔다. 여러분은 평화사절단인 것이다. 평화가 다른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사고 없이 잘 지내는 것이 곧 평화다. 부모님을 보고 싶으면 관세음보살을 염송해라. 부모님을 대신해서 여러분을 지켜줄 것”이라고 말했다. 수계 후 손에다 일일이 단주를 채워주었다. 기독교 가톨릭 신자들도 염주를 받아갔다. 이태리 장병들도 와서 염주를 주자 아주 좋아했다.
함께 간 우리 법사들이 연비를 도왔다. 김상래 법사는 2시간에 걸쳐 정신교육을 했는데 장병들이 아주 좋아했다. 퀴즈를 내고 맞히면 상금을 주는 등 정신교육이었지만 재미를 가미해 교육 효과가 훨씬 컸다.
법당방문에 앞서 교회와 성당도 방문해 금일봉을 전달했다.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함께 한한다는 마음을 듬뿍 담았다. 군목과 신부는 아직 없었다. 동명부대에는 군법사만 파견 나와있다. 지난해 말 3진을 따라 이곳으로 온 영우 권기원 법사의 노고를 치하했다. 우리 장병들의 무사귀환과 부대의 안녕과 레바논의 평화를 위해 늘 기도하고 축원해줄 것을 당부했다.
불교 더 멀리 퍼져 지구상에 영원한 평화 깃들기를…
짧지만 알찼던 이틀간의 여정을 마치고 다시 귀환 길에 올랐다. 부처님 오신날을 맞아 가도에 나부끼는 연등과 연초록으로 덮인 우리 산하를 보노라면 전쟁의 공포에 시달리는 레바논인들이 지금도 눈에 아른 거린다. 그곳 시장에게 나는 불교는 단 한번도 남을 공격한 적이 없는 종교라고 소개했었다. 종교가 선교와 교세확장을 이유로 생명을 앗거나 평화를 깨트리는 것은 죄악이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자 마자 일곱걸음을 걸으며 말씀하셨다는 저 유명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은 하늘 아래 위 인간이 가장 존귀하다는 요즘말로 인간 해방 선언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가장 침해받는 것은 전쟁이다. 전쟁을 앞서 막아야할 종교가 전쟁의 원인을 제공하는 이 기막힌 현실을 목도하고 같은 종교인으로서 좌괴감까지 들었다. 역사상 단 한번도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는, 정말 평화를 사랑하고 인간의 목숨을 존중하는 불교가 더 멀리 퍼져 지구상에 영원한 평화가 깃들기를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간절히 기원한다.
2009-04-27 오후 5:27:01 /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