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은 최선을 다해서 일을 성취하겠다는 원력을 세우고 매진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며 매사에 열심히 임할 것을 당부했다.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일면스님이 재단법인 대한불교진흥원이 선정하는 제8회 대원상(포교부문) 수상자에 선정됐다. 대원상은 재단법인 대한불교진흥원의 설립자인 고(故) 대원 장경호 거사의 뜻을 기려 모범적으로 정진하는 불자 및 단체를 선정해 시상하는 불교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상이다. 지난 8월31일 경기도 남양주 불암사에서 스님을 만나 소감과 요즘 근황 등을 들었다.
“모든 활동, 자비정신 구현으로 귀결돼야”
진흥원 주최 ‘대원상’ 포교부문 수상자로 최근 선정
생명나눔실천본부 통해 불교계 장기기증 인식 전환
군종특별교구장 역임 군불교 위상 강화와 내실 다져
뜻밖에도 스님은 처음 상을 받아본다고 했다. 의외다. 초대 군종교구장으로 4년간 최선을 다해 복무해 군승의 위상을 높이고 종단에서 군 불교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꾸는 공을 세웠다. 지금은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을 역임하며 장기기증 운동을 확산시키고 있다. 장기 기증 운동은 불교가 가장 중요시하는 생명존중, 보시 문화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불교신자들의 새로운 신행문화로 확산되고 있다.
스님은 그 최일선에 서 있다. 좁은 사무실에서 셋방살이를 면치 못하던 생명나눔실천본부를 맡아 10억 원을 들여 사무실을 샀다. 어려운 환자들에게 많은 혜택을 부여하고 있다.
이보다 앞서 교육원장으로 재직하며 승가교육의 기틀을 세우는데 일조했다. 광동학원 이사장으로 재직하면서 180억 원의 정부 보조금을 확보하고 교내에 학교 설립자 운허스님 동상을 세워 불교 건학이념을 분명히 했다. 해인승가대학 동문회장을 맡아서는 장학재단을 설립하고 사무실도 만들었다.
공이 많은데다 종단의 굵직한 소임을 오랫동안 여러 해 봉직해 당연히 포교대상을 받았겠거니 여겼는데 스님은 “남 추천 많이 하고 수도 없이 상을 주기도 했지만 그러고 보니 내가 상 받는 것은 처음”이라며 웃었다. 스님은 “중(衆)이 상 받는다고 좋아할 일도, 생색낼 것도 아니므로 특별한 소감은 없고 좀 더 잘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 또 장경호 거사가 불교발전을 염원하는 원력으로 진흥원을 만들었는데 그런 위대한 뜻을 받들기 위해 스님으로 좀 더 참다운 모습을 보이라는 뜻으로 안다. 그런데 상을 탄다고 생각하니 부끄럽다. 포교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군불교도 부처님 제자로서 당연한 일 아닌가”라고 말했다.
진흥원은 스님이 그동안 해온 많은 공로 중에서 특별히 군 포교와 장기기증운동을 들었다. ‘생명나눔실천본부를 통해 불모지였던 불교계 장기기증 등에 대한 인식 전환 및 교육 기회 확대 등 대외 확산을 도모한 점과 군종특별교구장을 역임하면서는 장병 및 간부불자 포교 지원 및 해외 파송 장병 위문 등 군 불교의 대외적인 위상 강화와 포교의 내실을 다지는데 기여하는 등 현재에도 포교 일선에서 열정적으로 헌신하고 있는 공로를 인정해 수상자로 선정했다’는 것이 진흥원의 설명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스님은 장기기증을 받아 생사의 기로에서 벗어났다. 총무원장을 지낸 법장스님을 이어 이사장을 맡아 사무실을 내고 지부를 개설하는 등 운동의 확산에 크게 기여했다. 스님은 “생명나눔실천본부는 불교의 자비사상을 바탕으로 생명나눔을 실천함으로써 밝고 맑은 복지사회 구현에 앞장서는 취지로 1994년 설립한 불교계 유일의 장기기증 단체”라며 “보건복지부 등록 장기이식결연기관이며 기증 및 후원회원 2만여 명이 가입해 있는 신뢰와 권위를 갖춘 단체로 의료복지사업을 실천하기 위하여 다양한 캠페인과 교육계몽 활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하며 전 국민의 건강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님은 “이 모든 활동은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정신의 구현”이라고 말했다. 스님은 대구 제주 등에 지사를 세우는 등 생명나눔운동 확산에 힘쓰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초대 군종교구장으로 활동하며 군 불교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거의 날마다 대대 법당까지 찾아다니며 장병들을 만났다. 군승들이 요청하면 어디든 달려갔다. 4년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스님을 당시 총무원장 지관스님이 한 번 더 맡아달라며 붙잡았지만 스님은 ‘모든 힘을 다 쏟아 더 이상 여력이 없다’며 사양했다. 열심히 한 덕분인지 군종교구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법문을 청하는 군승들이 많다. 교구장을 물러남과 거의 동시에 오랫동안 책임졌던 학교법인 이사장도 내려놓아 현재는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올 봄 부터는 동국대학교 경영대학이 개설한 제1기 사찰경영전문지도자 과정에 등록해 수학 중이다. 스님은 “체계적으로 사찰 경영 등을 배우지 못했는데 불교와 경영의 연관성에 대해 배웠다. 사회가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변화하는데 우리가 이를 따라 잡기 위해서는 불교를 사회에 더 잘 이해시키고 알리기 위한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스님은 적극적이다. ‘어려워서 못 하겠다’며 회피하거나 ‘다음에 하겠다’며 미루는 사람을 가장 싫어할 정도다. 가만히 있지 않고 수강신청을 하고 배우는 이유도 적극적인 성격 때문이다.
“나는 재주가 없는 사람이다. 하지만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본다. 불만을 갖게 되면 끝이 없다. 그 일이 싫어진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어려운 일도 길이 보이고 즐겁게 대하게 된다. 세상 일이 아무리 어렵다 한들 우리 부처님의 고행만큼 어렵겠는가. 부처님께서는 목숨을 던져 놓고 생사(生死)의 도리를 깨치지 않으셨나. 수많은 조사들이 또한 ‘한 소식’ 얻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그런데 수행자가 되어서 주어진 일 조차 못한다면 무슨 낯으로 대중들을 대할 것인가.” 스님은 “인간에게 주어지는 모든 일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적극적인 태도를 주문했다.
학교에서도 스님의 적극적 행동은 빛을 발했다. 수강 신청을 한 것도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일이 즐거워서’다. 과에서 막상 과목을 개설했는데 정원이 채워지지 않자 스님은 당신이 아는 스님들을 모았다. 그렇게 해서 타종단 스님들까지 수강을 했다. 한 학기 수업이 끝나던 지난 7월 초 과목을 개설한 정각원장 법타스님에게 ‘모범학생’ 추천을 부탁드렸더니 주저 없이 일면스님을 꼽았다. 스님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이 다른 스님들에게도 투영된 것이다.
스님의 적극적 행동은 사람과의 사이에서도 그대로 연결된다. 스님은 많은 모임을 주도하고 있다. 그 중에는 종단에서 높은 직위를 가진, 유명한 스님도 있지만 이름 없는 분들 혹은 다른 종단 스님들도 꽤 된다. 모임의 대부분은 스님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적극적으로 챙기고 열심히 뛰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도반들을 적극적으로 챙긴다.
얼마 전 스님은 해인강원 행자 시절부터 만나는 도반의 생일상을 차렸다. 토굴에서 조용히 공부하는 이 스님에게는 아는 도반도 신도도 거의 없다. 생일상이라 해야 보통의 저녁상에다 10여명 안팎의 스님 신도가 전부였다. 행자 도반으로 인연을 맺은 이래 지금껏 일면스님은 생일을 챙겨오고 있다. 그 날 일면스님은 조촐한 저녁 자리에서 홀로 ‘원맨쇼’를 했다. 평소에는 절대 하지 않던 우스갯소리에 우스꽝스런 몸짓까지 섞어가며 생일을 맞은 도반의 얼굴에 웃음이 떠나지 않도록 몸을 흔들고 땀을 흘렸다.
일면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도반이야 말로 나의 스승이며 갈 길을 비추는 등불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불제자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좋아하고 존경할 이유는 충분하다. 나는 도반들 만날 때가 가장 즐겁다. 내가 못하는 일은 내 도반이 하고 나는 그것을 돕고 그렇게 해서 누가하든 부처님 제자가 부처님 일 하는 것이니 족하지 않은가?”
스님은 늘 “나는 제2인생을 산다”며 하루하루를 허투루 보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한편으로는 “삶의 연장이라는 것이 따지고 보면 올 여름 더위 한 번 더 느끼는 정도”라며 초탈한 모습도 보인다. 집착하지 않되 주어진 하루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아침에 도를 통하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도인의 풍모를 닮았다.
남양주=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일면스님은…
1947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스님은 해인사에서 명허(明虛)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1964년 해인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67년 구족계를 수지했다. 1968년 해인강원을 마치고 동국대 종비생으로 입학했다. 1980년대 초 신도시가 개발되기 전인 서울 상계동에 들어가 도심포교당을 열어 학생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불교를 가르친 것을 시작으로 서울과 수도권에서 포교에 매진해왔다. 총무원 사회부장, 중앙종회의원, 제25교구본사 봉선사 주지, 교육원장, 초대 군종교구장, 광동학원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생명나눔실천본부 이사장으로 재직 중이다.
[불교신문 2655호/ 9월11일자]